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명을 찾아서 (문단 편집) === 일본 제국의 진출에 관련된 설정 === 이토의 생존으로 인해 일본이 온건해졌다고 설명하는데 일단 이토 히로부미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의의를 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일본 제국의 대외정책에서 이토 한 사람의 죽음으로 갑자기 급진화된 것이라 말하는건 무리가 있다. 이토 사망 이후에도 대중 유화론자라던가 식민지 무용론자들은 꽤 존재했고 일본의 침공 전쟁을 주도한 군부의 폭주는 이토 한 사람의 죽음만으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없다. 애당초 군부에게 거슬리면 총리조차도 암살당하는 나라였으니 이토 한 사람이 역사를 바꾸기는 커녕, 오히려 이토마저 암살 당하거나 이토의 유화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폭주했을 수도 있다. 또한 작중 일본 제국은 만주국을 경영하고 있는데 이는 [[만주사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허나 만주사변이란 것 자체가 일본 내각과 군 상층부의 지휘를 무시하고 일선 영관급 장교들이 폭주하여 독단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사실상 쿠데타에 필적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 제국의 대외정책 자체와 관계없이 폭주하던 일본 군부가 빚어낸 재앙이었으며 일본 정부가 이 폭주를 제어하지 않고 오히려 어쩔 수 없다며 묵인, 방관하고 책임자들을 영전시켜 군부 폭주를 부추긴 데서 증폭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작게는 일본 군부의 몽골과 [[복건성]] 침공과 크게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즉 짚어보자면 1. 단순히 이토의 생존으로 정책이 온건화되었다 하더라도 일본 제국 군부의 폭주를 제어할 어떤 조치가 없었다면 만주사변같은 군부 폭주로 인한 돌발적 사건이 억제되어 영미와의 전쟁이 방지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2. 친영미 노선을 꾸준히 유지할 정도의 정신머리가 있는 일본 정부가 일선 장교들의 막나가는 명령불복종 행위를 방관할 리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중 일본 제국의 조선 총독 자리는 대장 계급 출신자만 임명될 수 있다는 설정이 있는데 3.1운동 이후로는 명목상으로나마 민간인 출신 총독의 존재를 허용하고 하세가와의 후임으로 실제로 민간인 총독 임명 직전까지 갔던 실제 일본 제국의 역사보다도 더 [[군사화]], 강경화된 것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존재로 온건화됐다는 설정과 여러모로 모순된다. 물론, 좋게 좋게 생각하면 만주사변 이후로도 중일 전면전 발발까지 6년 간의 시간이 있었으며 중일전쟁 자체도 어이 없는 일로 폭주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만주사변까지는 어찌어찌 일어났으나 이후 군부의 억제를 막고 영미의 눈치를 봐가면서 팽창정책의 고삐를 잡고 중일전쟁을 막았다고 하면 말이 안되진 않는다. 근데 그 군부를 막고 친영미 노선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장난이 아닌 일이라서(...). 게다가 작중 일본 제국이 1941년 이후로 아예 완전한 군사독재로 흘러갔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애초에 앞뒤가 안 맞는 것이 되버린다. 특히 도조가 미국과 일본이 국력에서 쨉도 되지 않지만 일본에는 위대한 황국 정신이 있다고 미국에 덤빈 당사자라는 점에서(...) 작중의 일본 군사독재 묘사를 보면 작가가 진지하게 일본 역사에 대해 고찰해서 대체역사를 썼다기보다는 한국 역사에 대한 풍자로 썼다고 봄이 맞을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